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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1.29 올카, 백경과 프랑켄슈타인의 라이트 버전 1

'올카'의 국내 비디오 표지. 돌고래가 아닌데 돌고래라고…. 게다가 저 촌스러운 디자인…. OTL


올카(ORCA·1977)

상어잡이 배의 선장인 놀런은 어느날 바다에서 표본 채취 작업을 하던 해양학자인 레이첼 베드포드 일행과 만나고 그 과정에서 거대한 백상아리가 범고래의 공격에 나가떨어지는 광경을 목격한다. 상어 대신 범고래를 잡아 돈을 좀 만져보려던 놀런은 그러다 당신이 당할 거라는 샬롯의 경고를 무시하고 바다로 나가 한 무리의 범고래떼를 발견, 그 중 한 마리에게 작살을 쏜다.


그런데 쉽게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놀런의 예상을 깨고 이 범고래는 비명을 지르며 놀런의 배 스크루에 몸을 던져 자살을 시도한다. 산 채로 잡아 동물원에라도 팔아넘길 요량이었으나 생각도 못했던 비명과 행동에 크게 당황한 놀런은 곧 그 범고래를 건져올리지만 이미 치명상을 입고 죽어가는 중이다. 그리고 놀런을 비롯한 모든 선원들을 경악하게 하는 일이 벌어진다. 잡아올린 범고래가 배 위에서 유산을 하고 만 것.


인간의 그것과 너무나 유사한 새끼의 모습을 본 선원들은 모두 충격에 휩싸이고 놀런은 그 새끼를 바다에 버린다. 그 때 바다 속에서는 또 한 마리의 범고래가 이 끔찍한 광경을 모두 눈에 새기고 있다. 괴로운 울부짖음과 함께. 바로 잡힌 범고래의 짝인 수컷이었다.


귀항하던 놀런은 수컷 범고래의 공격을 받고 그 와중에 선원 한 명이 녀석에게 죽임을 당한다. 항구로 돌아와 다시는 범고래에겐 손을 안 대겠다고 다짐하는 놀런이지만 범고래의 복수는 이제 막 시작이었다.


해안가 주민들의 생계를 이어주는 물고기들을 모두 쫓아내는가 하면 정박돼 있는 배들을 모두 파괴(놀런의 배는 건드리지 않는다. 바다로 나오라는 무언의 메시지다)하고 유류 저장소까지 폭파시킨다. 주민들의 원성이 자자하지만 놀런은 바다에 나갈 생각을 하지 않고 급기야 범고래는 놀런의 집을 습격해 수몰시킨다. 또 한 선원의 목숨까지 덤으로 접수하면서.


결국 놀런은 떠밀리다시피 바다로 나가고 범고래의 복수극은 드디어 클라이막스로 치닫는다.


범고래(Orca·Killer Whale·Orcinus orca·Blackfish·Seawolf)는 참돌고래과에서 가장 큰 종이며 극지방에서 열대지방에 이르기까지 널리 발견되는 이빨고래입니다. 무척 사회적인 동물이며 무리를 지어 사냥하기 때문에 바다의 늑대라고도 불리죠. 범고래와 백상아리를 비교하는 경우가 종종 보이는데 일단 이 두 종류는 마주칠 일이 별로 없는 데다 종합적인 데이터를 봐도 상어가 범고래를 이길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습니다.


야생의 범고래는 보통 인간에게 위협적인 존재로 여겨지지 않지만 동물원이나 해양 공원에서 재주를 부리도록 사육된 범고래가 조련사나 관광객을 공격한 사례는 몇 건 있다고 합니다. 이 글을 쓰는 저도 FOX TV인가에서 사람이 공격 당하는 장면을 봤습니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내가 마음만 먹으면 너희들은 한입거리도 안 돼" 이러는 듯 보이더군요.

 

천적은 인간 뿐이라는 말처럼 범고래는 거의 모든 동물을 먹이로 삼는데 상어(아주 가끔), 바다표범, 바다코끼리, 물개, 바다사자, 펭귄 등은 물론 북극곰까지도 사냥할 때가 있다고 합니다. 뭍까지 올라와서 사냥감을 물고 바다로 돌아갈 수 있으며 물개나 바다사자를 가지고 공놀이를 하는 잔인한 면도 있습니다.


 

다큐 '더 코브: 슬픈 돌고래의 진실' 소식을 보니 이 영화가 떠오르더군요.



'올카'의 주인공은 일단 놀런이지만 진짜 주인공은 범고래입니다. 1975년 작 '죠스' 이후에 선을 보인 크리처물 중 하나죠.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을 죠스의 아류작이라고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적어도 제가 보기엔 단순히 아류라고 치부해 버리기 아까운 작품입니다.


 

놀런이 암컷 범고래를 배 위로 끌어올리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도록 망가진 뒤다. 그 충격으로 범고래는 유산을 하고 사람과 흡사한 '태아'의 모습에 모두 경악한다.


이 끔찍한 광경을 바다 속에서 보고 있다가 새끼가 유산되는 모습을 목도하고 울부짖는 수컷. 해가 진 후 귀항하던 놀런의 배를 습격해 선원 한 명을 죽인 후 자신을 쳐다보는 놀런의 모습을 자신의 눈에 각인시킨다. "네 놈은 꼭 내 손으로 죽이고 말겠다" 이러기라도 하듯이.


일단 이 영화의 감독 마이클 앤더슨은 죠스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작품을 끌고 갑니다. 죠스가 언뜻 언뜻 보이는 등지느러미와 공기통 몇 개로 존재감을 드러냈지만 올카는 처음부터 끝까지 범고래의 모습을 온전히 드러냅니다. 게다가 죠스의 상어는 감정이나 지성 따위는 없는 원시 시대의 포악함으로 무장하고 있지만 올카 속 범고래는 아내를 잃은 남편으로서 복수를 행하는 존재입니다. 지적 존재가 아니고서야 '복수'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이 안 되죠.

 

그런 점에서 살육 본능 밖에 없는 식인상어와는 다른 종류의 스릴을 이 작품은 선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의인화된 고래와 놀런과의 관계는 공포물이라기 보다 고전적인 드라마의 냄새를 풍깁니다. 원한으로 얽힌 악연, 아내와 아이를 음주운전자가 낸 사고로 잃은 놀런이 자신과 고래를 동일시하는 과정, 죄책감과 두려움이 빚어내는 증오 등.

 

결국 놀런은 자신과 고래가 숙명적인 고리로 엮여있다고 생각하는 지경에까지 이릅니다. 이쯤 되면 떠오르는 게 바로 '백경'입니다. 좀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백경의 그것과는 비슷하면서도 주체가 반대되는 경우죠. 모비딕에게 복수를 꿈 꾸는 존재가 에이브러험 선장이었다면 올카에서는 거꾸로 고래가 인간에게 복수를 하니까요.

 

놀런이 선원들을 하나 둘씩 잃어가면서도 뭔가에 홀린 듯 고래를 따라 얼음과 눈으로 뒤덮힌 북극해로 가는 모습도 그렇고요.

 

최종 결전의 장소가 북극해이고, 복수에 눈이 먼 괴물을 만들었다가 그 괴물을 상대하며 종국엔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는 점에선 프랑켄슈타인이 연상됩니다. 이 포스팅의 제목이 저 따위인 이유입니다.

북극해에서 놀런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포효하는 수컷. 대치 상황에서 서로의 눈에 상대의 모습이 비춰진다. 진부하지만 그래도 멋있는 연출이다.


유빙 위에서 범고래의 공격을 받은 놀런은 결국 죽음을 맞고 바다 속으로 사라진다. 복수를 끝낸 후 레이첼을 바라보는 수컷의 눈에 고여있는 건 바닷물인가, 아니면 복수를 하고 났음에도 채워지지 않는 그리움과 슬픔에 흘리는 눈물인가.


그렇다고 이 영화가 그런 걸작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작품이라는 소린 아닙니다. 해리 포터의 마법학교 호그와트 교장 덤블도어 역을 끝으로 2002년 사망한 리차드 해리스(놀런)와 팜므 파탈의 이미지가 강했던 샬롯 램플링(레이첼)두 주연의 연기가 제법 좋긴 하지만 사실 드라마가 좀 느슨해요. 내러티브도 허술한 편이고. 초반 충격에 비하면 중반부는 다소 늘어집니다. 액션 연출의 몇몇 부분은 부드럽지 못해요.

 

그래도 이 영화는 꽤 재미있습니다(적어도 저에겐). 공들여 찍은 듯한 범고래의 연기와 특수효과도 제법 좋았고요. 무엇보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처연한 음악이 좋습니다.





 

뱀발 :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실린 내용이라고 알고 있는데 20세기 초 호주의 어부들이 '올드 톰'이라고 부르는 범고래가 자신의 무리를 이끌고 어부들과 큰 고래 사냥을 해서 고기를 나눠가졌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범고래 무리가 큰 고래를 에워싸면 인간들이 작살로 잡고 범고래들이 일부를 먹은 뒤 어부들이 나머지를 가져갔다죠. 심지어는 사냥감을 발견한 범고래가 바닷가로 와 꼬리로 물을 치며 어부들을 불러냈다고 해요. 진짜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Posted by 나이트세이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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