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에 이어


오손도손 담소를 나누며 경치를 즐기던 사람들은 무시무시한 악어로부터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이 되자 신경질적으로 변하기 시작합니다. 케이트에게 왜 배를 돌려서 이 지경을 만드냐고 하는 사람부터 되든 안 되든 헤엄쳐서 건너겠다고 우기는 사람까지 각양각색이죠.

그 순간 일행 중 하나가 악어에게 잡혀 물 속으로 끌려들어갑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잡혀갔는지를 보여주진 않는다. 뭔가 첨벙거리기에 일제히 뒤를 돌아보니 분명 방금 전까지 거기 있던 사람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고 넘실거리는 수면과 스르륵 사라지는 악어의 꼬리만 살짝 보일 뿐.



케이트의 배를 집적거리다 물러난 뒤 다시 이들 앞에 나타난 '동네 노는 형'들이 탄 모터보트가 뭔가에 들이받혀 뒤집어진다. 이 때도 악어의 모습은 보여주지 않는다.



고립되기 전 케이트와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던 '동네 노는 형' 중 하나. 껄렁함이 몸에 배인 배우구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불량스러운 연기를 잘했는데 왠지 배우의 낯이 익다.



바로 터미네이터 4의 샘 워딩턴이다. 얼굴을 확인한 순간부터 원래 남자 주인공보다 이 사람이 어떤 활약을 할까에 더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막돼먹은 놈인 줄 알았던 이 친구는 (케이트에게 잘 보이려고 그러는게 다분히 눈에 보이지만) 탈출을 위해 육지의 나무와 섬의 나무를 밧줄로 잇겠다며 자신이 나선다. 그리고 일단은 성공한다. 왜 '일단은'인지는 보면 안다. 배우에 비해 역할 비중이 좀 허무하다. 그래도 꽤 멋있었지만.


이 때부터 사람들은 '정말 죽는구나' 하는 절망감에 좌절합니다. 물속에 들어갔다간 어떻게 된다는 걸 눈 앞에서 봤으니 말이죠.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장소 선택도 있지만 악어의 몸뚱아리를 처음부터 드러내지 않고 저렇게 조금씩 감질나게 보여주면서 보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수법이나, 탈출 과정에서 보여지는 사람들의 이기심과 그로 인한 갈등이 영화의 재미를 배가시킨다는 점입니다.

특히나 밧줄 연결에 성공한 뒤 일행 중 한 남자가 보여준 극도의 이기심은 '아마 나였어도 저랬을 거야' 싶으면서도 인간이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 얼마나 추해질 수 있는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 줍니다.


아내와 아이를 위해서였다고는 하나 모두의 희망을 일거에 무너뜨린 사내의 비극적 최후. 막상 죽는 걸 보니 또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끌려들어가기까지(비록 순식간이지만) 굉장히 처참한 과정을 겪기 때문이기도 하다.



1부에서 언급했던 죽음의 뺑뺑이. 이런 걸 보면 감독이 악어에 대해 공부 많이 했구나 싶다.


이 영화 속 악어는 비주얼이 상당히 좋습니다. 모형과 CG의 결합이 아주 자연스럽고 묘사도 좋아요. 그리고 마지막 20여 분 간 남자 주인공이 저 악어의 소굴에서 벌이는 사투는 정말 손에 땀을 쥐게 합니다. 좁은 동굴과 안 어울리는 거대한 악어가 동굴을 가득 채우다시피 하며 기어들어오는 장면은 정말이지….


할리우드 영화였으면 난리가 났을 장면. 케이트의 애견 캐빈이 악어에게 잡아먹히고 있다. CG 내지는 모형이니까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마시라.



이 영화 로그는 악어를 다루지만 의외로 악어가 등장하는 장면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스필버그의 죠스가 그랬던 것처럼 악어가 나오지 않는 장면에서도 영화의 재미는 떨어지지 않아요. 극이 느슨해질 참이면 악어가 나타나고 악어가 사라지면 인간들의 갈등이 극을 이끌죠.

이 포스팅 제목이 저렇게 거창하긴 하지만 이 작품이 걸작이란 소린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류의 크리처 물이 어떤 식으로 연출돼야 하는 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이 감독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집니다.



뱀발 1 : 이 영화를 얘기할 때 '프라이미벌(TV 드라마 프라이미벌이 아닙니다)', '블랙 워터' 등과 비교하는 분들이 계시더군요.

일단 '프라이미벌'은 실제 아프리카 브룬디에서 300여 명을 죽였다는 킬러 악어 '구스타브'를 소재로 했다고는 하나 악어에 집중한 영화가 아니라 '호텔 르완다'처럼 아프리카 내전을 다루면서 악어는 곁가지처럼 나오는 통에 죽도 밥도 아닌 물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내전으로 생긴 시체를 먹은 구스타브가 인육의 맛에 길들여져 종국엔 스스로 사람을 사냥하러 다니게 됐다는, 결국 구스타브는 인간이 만든 괴물이라는 '너무나 교훈적인' 얘기도 그렇고요.

'블랙 워터' 역시 실화를 소재로 했다는 영화고 악어를 우습게 봤다가 절박한 상황에 고립된다는 설정 또한 고전적인 크리처 물에 부합하지만 제가 얘기하는 '거대 악어'를 다룬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이 작품 또한 패∼스.

뱀발 2 : 남자 주인공 역을 맡은 마이클 바탄은 '25살의 키스'에서 드류 베리모어가 사랑에 빠지는 교사 샘 콜슨을 연기했던 배우죠. 그 역으로 미소가 아름다운 배우라는 평을 받았다고 하네요. 제가 보기에도 인상이 참 부드럽습니다. 너무 둥글지도 않으면서요.

뱀발 3 : 이 경우가 재미있는데… 여주인공 케이트 라이언을 연기한 라다 미첼은 제목 이상하게 붙여진 영화를 얘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에이리언 2020(Pitch Black·2000)'에서 자신이 조종하던 비행선의 사람들을 모두 죽일 뻔 했던 죄책감에 끝까지 괴로워하다 괴물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인물 캐롤린 프라이 역을 맡았었습니다. 이 영화 로그에서도 요구조자를 구한답시고 배의 방향을 바꿨다가 사람들 다 죽일 뻔하죠.

그 외에도 다수의 작품에 출연하고 있는 배우입니다. 가장 최근에는 '써로게이트'에서도 등장하죠(저랑 동갑입니다. 1973년생... 므흣......... 뭐, 그냥 그렇다고요...).








Posted by 나이트세이버즈




잡지사의 여행 전문 기자 피트 맥킬은 호주의 노던 준주(Northern Territory)를 취재하기 위해 그 곳을 찾았다가 그 지역 토박이이며 여행 가이드를 하는 케이트 라이언의 배를 탄다.

9명의 관광객을 태우고 그 지역에 많이 사는 악어를 비롯해 이곳 저곳을 안내하던 케이트는 상류 쪽에서 조명탄이 쏘아올려지는 모습을 보게 되고, 케이트는 사람들을 설득해 그 곳으로 배를 돌린다.

성스러운 곳이라 불리는 상류 쪽에 다다른 일동은 가라앉은 배를 발견하고 케이트는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더 늦기 전에 돌아가려는 찰나 물 속에서 뭔가가 케이트의 배를 강하게 들이받는다.

케이트는 물이 쏟아져 들어오는 배를 서둘러 근처의 작은 섬에 대고 사람들은 관광객에서 졸지에 조난자 신세가 된다. 여기에 무전기나 조명탄이 모두 못쓰게 된 데다 설상가상 이 곳은 바다의 밀물과 썰물의 영향을 받아 수위가 급격히 변하는 감조하천이다.

물은 점점 눈에 띄게 차오르고, 육지로 헤엄쳐 가자니 물에 들어가면 십중팔구 악어의 공격을 받게 되는 상황 속에서 해까지 져버린다.

칠흑 같은 어둠, 발 끝을 적셔오는 물, 언제 뛰쳐나올 지 알 수 없는 악어, 점점 좁아지는 섬…. 이들은 이 상황에서 어떻게 탈출할 것인가.



1980년 작 엘리게이터(Alligator)는 지금까지 악어 영화의 '넘사벽'이었습니다. 지금 봐도 별 어색함 없는 특수효과와 분위기 있는 연출, 폐쇄 공간에서 쫓고 쫓기는 긴박감 등 장점이 많죠.

(모형 악어의 어색함을 없애려고 감독은 악어가 혼자 다니는 장면 등에서 실제 악어를 사용했습니다. 사물을 축소한 모형 세트에서 돌아다니게 만들었죠. 사람들과 섞이는 신에서도 모형 악어의 움직임은 상당히 좋습니다. 지금 봐도 감탄스러운 건 실제 악어가 먹이를 삼킬 때 머리를 위로 흔들어 그 탄력으로 뱃속에 집어넣는데 모형으로도 그 효과를 잘 살리고 있더군요.)


[엘리게이터의 감독 루이스 티그는 무난한 오락 영화를 많이 연출했습니다. 지금도 기억 나는 작품들이 '개 목걸이(Wedlock·1991)', '네이비 씰(Navy SEALS·1990)', '나일의 대모험 (The Jewel Of The Nile·1985)', '쿠조(Cujo·1983)' 등이죠.]



하지만 그 후로 나온 악어 영화들은 하나같이 실망스러웠습니다. 10년 후에 등장한 데다 무려 '화학 물질의 영향으로 돌연변이를 일으켜 거대해진 악어'라는 설정을 갖고 있음에도 너무나 조잡한 특수 효과에 뭐 하나 새로울 것 없던 '엘리게이터 2(Alligator 2 : The Mutation·1991)'나, 도대체 뭘 말하려 한 건지 지금도 이해 불가인 코미디 호러 '플래시드(Lake Placid·1999)' 등 어느 것 하나 엘리게이터의 아성을 넘지 못했습니다.



어따... 그 놈 참 크네 그랴. 발톱은 숍에서 관리했나?



소리 없이 다가오긴 개뿔... 출연진이 아깝다. 포스터 분위기의 반만 해 줬어도 좋았잖아!



엘리게이터 2 개봉 당시 길에서 뿌리던 전단지. 멀티플렉스는커녕 동시 상영과 소극장이 난무하던 저 때는 영화 개봉하면 저렇게 찌라시를 뿌려댔다. 굉장히 유치한 선전 문구는 기본. 저 평단의 극찬은 자세히 보면 1편인 엘리게이터에 대한 평가다. 이 영화가 영 아니라는 걸 수입사 측에서도 알았나보다.


크리처 물이 성공하려면 거대 생물에 대한 경이로움과 두려움, 긴장, 공포에 집중하든가 괴물을 둘러싸고 그려지는 인간 군상의 드라마를 잡아야 하는데 이제껏 나온 영화들은 하나같이 '더 거대한 놈이 온다' 이 따위에 치중하느라 크리처 물 본연의 맛을 살리지 못했죠.

각설하고 지금 다루는 영화 '로그'에 등장하는 악어는 '바다악어'라는, 실제 존재하는 악어입니다.

일단 이 영화의 '주인공'인 바다악어에 대해 잠시 언급을 하자면….

동남아 일대와 호주 등지에서 서식하는 바다악어(Crocodylus porosus)는 현존 파충류 중 가장 큰 종류입니다. 수컷이 암컷보다 크고 수컷은 다 자라면 평균 6m 정도 되며 드물게 7m까지 큰다고 합니다.

암컷은 3m 정도. 체중도 큰 놈은 1t을 넘길 때가 있을 정도죠. 5m 정도만 되도 400∼500㎏이라니 대단한 동물입니다.

바다악어에 관해서 떠도는 얘기 중 하나가 10m까지도 자랄 수 있다는 소리인데 확인된 바는 없습니다. 현재 기록 상으로는 호주에서 잡힌 8.6m 짜리가 가장 큰 놈이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악어가 그러하듯 이 바다악어도 땅 위에서 상당히 빠르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악어가 뭍에 있는 사냥감을 잡을 때 보면 순식간에 달려들어 물 속으로 끌고 들어가죠. 바다악어의 경우는 아니지만 단거리에서 달리는 말과 비슷한 속도를 낸 경우도 있습니다.
 
바다악어는 성질이 포악하고 그 크기만큼 힘이 대단해서 상당히 위험한 동물입니다. 가장 무서운 공격은 'Death Roll'인데 말 그대로 먹이를 물고 무시무시한 힘으로 빙글빙글 돌죠. 한 번 걸리면 어디 한 군데 부러지거나 물 잔뜩 먹고 혼절해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먹이 입장에서는 차라리 그 순간 죽어버리는게 나중을 생각하면 편할 수 있겠죠. 산 채로 잡아뜯기거나 뱃속으로 들어갈 바에야. 서식지 부근에서는 연간 약 300명 정도의 사람이 이 바다악어에게 희생된다고 하죠.

1939년 호주 북부에서 서포크 종 숫말이 바다악어에 당했는데 1t이 넘는 말을 킬 시키기까지 불과 1분도 걸리지 않았답니다. ㅎㄷㄷ;


이 영화 '로그'는 2005년 '
울프 크릭'으로 선댄스 영화제에 초청돼 쿠엔틴 타란티노, 로베르토 로드리게즈 등 재기 넘치는 감독들로부터 인정을 받은 그렉 맥린 감독의 두 번째 작품입니다.

호주 돈으로 3천만불(약 250억원)의 제작비가 들어간 이 영화에 대해 감독은 호주판 '죠스'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죠. 감독이 대작 악어 영화를 만들 아이디어가 10가지 정도 더 있다고 한 것으로 미뤄볼 때 속편이 나올 가능성도 보입니다.

그 바람처럼 이 영화는 죠스나 엘리게이터 등 성공한 크리처 물의 공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가 탁월한 이유 중 하나는 '장소'입니다. 엘리게이터 1편의 성공 요소 중 하나는 하수구라는 음습하고 좁은 공간에서 악어와 충돌하며 빚어지는 긴장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제 생각입니다). 하지만 다른 악어 영화들은 도심이나 너른 호수처럼 비교적 넓은 공간에서 사건을 만들었죠.

로그의 주 무대는 작디 작은 섬입니다. 더구나 낮에는 섬이지만 해가 지면서 거의 물에 잠기고 마는 고립된 공간이죠. 그렇기에 이 영화는 크리처 물 외에 재난 영화의 성격도 띱니다.

'섬이라 하기도 민망한 섬. 저 나무들의 뿌리 부근까지 물에 잠기는 곳이다. 앞쪽으로 육지가 보이지만 그 사이를 헤엄쳐 가려면 악어가 공격해오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 영화에는 굉장히 반가운 얼굴이 등장합니다. 인류의 구세주가 될 뻔했던 바로 그 분.

 

2부에서 계속….

 

 

Posted by 나이트세이버즈

'올카'의 국내 비디오 표지. 돌고래가 아닌데 돌고래라고…. 게다가 저 촌스러운 디자인…. OTL


올카(ORCA·1977)

상어잡이 배의 선장인 놀런은 어느날 바다에서 표본 채취 작업을 하던 해양학자인 레이첼 베드포드 일행과 만나고 그 과정에서 거대한 백상아리가 범고래의 공격에 나가떨어지는 광경을 목격한다. 상어 대신 범고래를 잡아 돈을 좀 만져보려던 놀런은 그러다 당신이 당할 거라는 샬롯의 경고를 무시하고 바다로 나가 한 무리의 범고래떼를 발견, 그 중 한 마리에게 작살을 쏜다.


그런데 쉽게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놀런의 예상을 깨고 이 범고래는 비명을 지르며 놀런의 배 스크루에 몸을 던져 자살을 시도한다. 산 채로 잡아 동물원에라도 팔아넘길 요량이었으나 생각도 못했던 비명과 행동에 크게 당황한 놀런은 곧 그 범고래를 건져올리지만 이미 치명상을 입고 죽어가는 중이다. 그리고 놀런을 비롯한 모든 선원들을 경악하게 하는 일이 벌어진다. 잡아올린 범고래가 배 위에서 유산을 하고 만 것.


인간의 그것과 너무나 유사한 새끼의 모습을 본 선원들은 모두 충격에 휩싸이고 놀런은 그 새끼를 바다에 버린다. 그 때 바다 속에서는 또 한 마리의 범고래가 이 끔찍한 광경을 모두 눈에 새기고 있다. 괴로운 울부짖음과 함께. 바로 잡힌 범고래의 짝인 수컷이었다.


귀항하던 놀런은 수컷 범고래의 공격을 받고 그 와중에 선원 한 명이 녀석에게 죽임을 당한다. 항구로 돌아와 다시는 범고래에겐 손을 안 대겠다고 다짐하는 놀런이지만 범고래의 복수는 이제 막 시작이었다.


해안가 주민들의 생계를 이어주는 물고기들을 모두 쫓아내는가 하면 정박돼 있는 배들을 모두 파괴(놀런의 배는 건드리지 않는다. 바다로 나오라는 무언의 메시지다)하고 유류 저장소까지 폭파시킨다. 주민들의 원성이 자자하지만 놀런은 바다에 나갈 생각을 하지 않고 급기야 범고래는 놀런의 집을 습격해 수몰시킨다. 또 한 선원의 목숨까지 덤으로 접수하면서.


결국 놀런은 떠밀리다시피 바다로 나가고 범고래의 복수극은 드디어 클라이막스로 치닫는다.


범고래(Orca·Killer Whale·Orcinus orca·Blackfish·Seawolf)는 참돌고래과에서 가장 큰 종이며 극지방에서 열대지방에 이르기까지 널리 발견되는 이빨고래입니다. 무척 사회적인 동물이며 무리를 지어 사냥하기 때문에 바다의 늑대라고도 불리죠. 범고래와 백상아리를 비교하는 경우가 종종 보이는데 일단 이 두 종류는 마주칠 일이 별로 없는 데다 종합적인 데이터를 봐도 상어가 범고래를 이길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습니다.


야생의 범고래는 보통 인간에게 위협적인 존재로 여겨지지 않지만 동물원이나 해양 공원에서 재주를 부리도록 사육된 범고래가 조련사나 관광객을 공격한 사례는 몇 건 있다고 합니다. 이 글을 쓰는 저도 FOX TV인가에서 사람이 공격 당하는 장면을 봤습니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내가 마음만 먹으면 너희들은 한입거리도 안 돼" 이러는 듯 보이더군요.

 

천적은 인간 뿐이라는 말처럼 범고래는 거의 모든 동물을 먹이로 삼는데 상어(아주 가끔), 바다표범, 바다코끼리, 물개, 바다사자, 펭귄 등은 물론 북극곰까지도 사냥할 때가 있다고 합니다. 뭍까지 올라와서 사냥감을 물고 바다로 돌아갈 수 있으며 물개나 바다사자를 가지고 공놀이를 하는 잔인한 면도 있습니다.


 

다큐 '더 코브: 슬픈 돌고래의 진실' 소식을 보니 이 영화가 떠오르더군요.



'올카'의 주인공은 일단 놀런이지만 진짜 주인공은 범고래입니다. 1975년 작 '죠스' 이후에 선을 보인 크리처물 중 하나죠.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을 죠스의 아류작이라고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적어도 제가 보기엔 단순히 아류라고 치부해 버리기 아까운 작품입니다.


 

놀런이 암컷 범고래를 배 위로 끌어올리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도록 망가진 뒤다. 그 충격으로 범고래는 유산을 하고 사람과 흡사한 '태아'의 모습에 모두 경악한다.


이 끔찍한 광경을 바다 속에서 보고 있다가 새끼가 유산되는 모습을 목도하고 울부짖는 수컷. 해가 진 후 귀항하던 놀런의 배를 습격해 선원 한 명을 죽인 후 자신을 쳐다보는 놀런의 모습을 자신의 눈에 각인시킨다. "네 놈은 꼭 내 손으로 죽이고 말겠다" 이러기라도 하듯이.


일단 이 영화의 감독 마이클 앤더슨은 죠스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작품을 끌고 갑니다. 죠스가 언뜻 언뜻 보이는 등지느러미와 공기통 몇 개로 존재감을 드러냈지만 올카는 처음부터 끝까지 범고래의 모습을 온전히 드러냅니다. 게다가 죠스의 상어는 감정이나 지성 따위는 없는 원시 시대의 포악함으로 무장하고 있지만 올카 속 범고래는 아내를 잃은 남편으로서 복수를 행하는 존재입니다. 지적 존재가 아니고서야 '복수'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이 안 되죠.

 

그런 점에서 살육 본능 밖에 없는 식인상어와는 다른 종류의 스릴을 이 작품은 선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의인화된 고래와 놀런과의 관계는 공포물이라기 보다 고전적인 드라마의 냄새를 풍깁니다. 원한으로 얽힌 악연, 아내와 아이를 음주운전자가 낸 사고로 잃은 놀런이 자신과 고래를 동일시하는 과정, 죄책감과 두려움이 빚어내는 증오 등.

 

결국 놀런은 자신과 고래가 숙명적인 고리로 엮여있다고 생각하는 지경에까지 이릅니다. 이쯤 되면 떠오르는 게 바로 '백경'입니다. 좀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백경의 그것과는 비슷하면서도 주체가 반대되는 경우죠. 모비딕에게 복수를 꿈 꾸는 존재가 에이브러험 선장이었다면 올카에서는 거꾸로 고래가 인간에게 복수를 하니까요.

 

놀런이 선원들을 하나 둘씩 잃어가면서도 뭔가에 홀린 듯 고래를 따라 얼음과 눈으로 뒤덮힌 북극해로 가는 모습도 그렇고요.

 

최종 결전의 장소가 북극해이고, 복수에 눈이 먼 괴물을 만들었다가 그 괴물을 상대하며 종국엔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는 점에선 프랑켄슈타인이 연상됩니다. 이 포스팅의 제목이 저 따위인 이유입니다.

북극해에서 놀런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포효하는 수컷. 대치 상황에서 서로의 눈에 상대의 모습이 비춰진다. 진부하지만 그래도 멋있는 연출이다.


유빙 위에서 범고래의 공격을 받은 놀런은 결국 죽음을 맞고 바다 속으로 사라진다. 복수를 끝낸 후 레이첼을 바라보는 수컷의 눈에 고여있는 건 바닷물인가, 아니면 복수를 하고 났음에도 채워지지 않는 그리움과 슬픔에 흘리는 눈물인가.


그렇다고 이 영화가 그런 걸작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작품이라는 소린 아닙니다. 해리 포터의 마법학교 호그와트 교장 덤블도어 역을 끝으로 2002년 사망한 리차드 해리스(놀런)와 팜므 파탈의 이미지가 강했던 샬롯 램플링(레이첼)두 주연의 연기가 제법 좋긴 하지만 사실 드라마가 좀 느슨해요. 내러티브도 허술한 편이고. 초반 충격에 비하면 중반부는 다소 늘어집니다. 액션 연출의 몇몇 부분은 부드럽지 못해요.

 

그래도 이 영화는 꽤 재미있습니다(적어도 저에겐). 공들여 찍은 듯한 범고래의 연기와 특수효과도 제법 좋았고요. 무엇보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처연한 음악이 좋습니다.





 

뱀발 :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실린 내용이라고 알고 있는데 20세기 초 호주의 어부들이 '올드 톰'이라고 부르는 범고래가 자신의 무리를 이끌고 어부들과 큰 고래 사냥을 해서 고기를 나눠가졌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범고래 무리가 큰 고래를 에워싸면 인간들이 작살로 잡고 범고래들이 일부를 먹은 뒤 어부들이 나머지를 가져갔다죠. 심지어는 사냥감을 발견한 범고래가 바닷가로 와 꼬리로 물을 치며 어부들을 불러냈다고 해요. 진짜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Posted by 나이트세이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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